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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원 후 첫 2주, 진짜 힘들었던 순간들 – 쇄골 수술 경험담 일기

헬씨해 2025. 5. 25. 17:3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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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술실 문을 나서던 그 순간, 솔직히 생각했다. ‘이제 아프지만 않으면 되겠지.’
하지만 그 생각은 퇴원 첫날 밤 바로 무너졌다. 마취가 풀리고 본격적으로 통증이 몰려왔을 때, 나는 깨달았다. 병원에서는 적어도 호출 버튼이 있었지만, 집에서는 아무도 없다는 게 이렇게 큰 공포일 줄은 몰랐다.

첫 번째 고비: 잠이 안 오는 밤

침대에 누웠지만, 자세를 어떻게 해도 불편했다.
약기운이 떨어지면 어깨부터 팔까지 뻐근하게 욱신거렸다. 왼쪽으로 눕자니 통증이 심했고, 오른쪽은 불편해서 뒤척이다 결국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.
조금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찌릿.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욱씬.
베개 두세 개를 겹쳐 기대보려 했지만, 각도가 애매하면 오히려 통증이 더 심했다.
하루 종일 깨어 있다가 밤에는 또 잠을 설치니,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져버렸다.
'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'라는 희망이 무너지는 느낌. 수면 부족은 진짜 회복을 방해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.

두 번째 고비: 밥 먹는 것도 일이 될 줄이야

숟가락을 드는 것조차 불편할 줄은 몰랐다.
왼손잡이도 아닌데, 왼손으로 밥을 먹으려니 음식이 입가에 다 흘러내렸다. 밥풀이 튀고, 국은 손에 떨어지고…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.
간단한 컵라면 하나 끓이기도 벅찼다. 냄비를 들 수 없어서 뜨거운 물을 붓다가 손등에 튀기도 했다.
옷 입는 것도, 머리 감는 것도 전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. 샤워 후 머리를 말리는 것도 한 손으로는 영 어렵고, 속옷 입는 건 퍼즐 맞추기처럼 복잡했다.
‘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였나?’
평소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갑자기 벽처럼 느껴졌다. 자존심이 바닥을 칠 때쯤,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.

세 번째 고비: 씻는 게 공포가 된 날

혼자 샤워를 하다 팔이 미끄덩 하고 흔들렸을 때,
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. 손잡이도 없고, 발수 매트도 없던 욕실. 그대로 넘어진다면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.
한 손으로 세수하고, 비누칠을 하다 보면 자꾸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. 수건을 짜는 것도 어렵고, 머리 감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할 날도 있었다.
“괜찮아, 안 부러졌어, 아직 괜찮아.”
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, 울컥했던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.
샤워가 아니라 생존 훈련 같았다. 내가 이렇게 무력감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다.

감정은 회복보다 더디다

주변에서는 “그래도 뼈는 잘 붙을 거야”라고 말했지만,
문제는 뼈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.
아무리 조심해도 혹시나 실수로 다시 다치진 않을까, 누가 내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깜짝 놀라고.
현관문을 열기 위해 상자를 들 때, 택배를 받기 위해 몸을 숙일 때조차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.
움직이는 게 두렵고, 매일이 눈치 보이고, 점점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.
사람 자체가 위축됐다.
몸이 회복되기 전에, 마음이 굳어버리는 느낌. 이런 감정을 누가 공감해줄 수 있을까 싶은 외로움이 더 힘들었다.

나처럼 힘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

퇴원 후 2주는 몸도 마음도 아프다.
그래서 더 조심하고, 더 울고, 더 지쳐도 괜찮다.
내가 약해서가 아니라, 그만큼 큰 수술을 이겨낸 몸과 마음이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.
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고,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.
수술은 끝났지만, 회복은 계속된다.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외롭고 고되지만…
당신도 지나올 수 있다.
천천히, 울면서, 불평하면서라도 괜찮으니까.
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길.

 

※ 면책조항: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글로, 의료적 조언이나 진단,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. 증상이나 회복 과정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,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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